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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소식

누구도 말하지 않는 “사라진 신뢰”: 최근의 교권 관련 개정 논의에 대하여

by 신기룬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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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변호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2023년 7월, 한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면서 교권의 추락과 침해가 연일 화제가 되었다. 정부는 ‘교권 강화’ 국정과제에 이어, 교권 강화 및 확립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다며 2023년 8월 23일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해당 종합방안은 교권 확립을 위한 유초중등 고시 마련, 불합리한 학생인권조례 자율 개선, 법령과 학칙에 따른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 범죄와 구분하는 법령 개정과 절차 개선 및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대응 조치 강화, 교원-학부모 소통 관계 개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후, 2023년 8월 17일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과 유치원 교원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고시안이 발표되고, 10일간의 행정예고를 거쳐 9월 1일 고시가 공포·시행되었다. 2023년 9월 21일에는 소위 ‘교권회복 4법(교원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과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9월 27일에는 학생생활지도 고시 해설서가 배포되었다.

 

법 개정과 행정규칙 및 관련 해설서가 숨 가쁘게 마련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일련의 논의들이 진정으로 위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혼란스럽다. 교원을 보호한다는 목소리 뒤에 교원을 둘러싼 이들의 인권이 후 순위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두렵다. “교원의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배제를 선언하는 법규의 존재 자체가 생활지도와 교육의 경계를 더 모호하게 한다는 우려도 감출 수 없다. 

 

무엇보다 10여 년의 긴 사회운동 속에 조금씩 확보되어 온 학생인권과 아동 인권의 의미를 한순간에 후퇴시키는 의사결정권자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무책임하고 무지하다.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 추진”을 지시한 대통령 말씀(2023. 08.23. 교육부 보도자료) 속에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항 관계로 존재하는데, 교권과 학생인권이 같은 위계에 있던 적이 정녕 있던가?

 

무엇보다 교권이란 교원지위법에서 유추할 수 있듯 “교육활동을 하는 교원의 지위(권한)”을 의미한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이 교사의 학생교육권(수업권)을 인정하고 이를 보장하는 것은 헌법상 당연히 허용된다 할 것이나(헌재2013. 11. 28. 2007헌마1189등 참조), 초·중등학교에서의 학생교육은 교사 자신의 인격 발현, 또는 학문과 연구의 자유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교사의 직무에 기초하여 ‘국민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교육 및 그 토대 위에서의 기초적 단계의 전문교육’(초·중등교육법 제38조, 제41조, 제45조)이라는 초·중등학교의 교육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헌재2021. 5. 27. 2018헌마1108)”이라 설시하여 헌법상 기본권과의 차이를 분명히 밝혔다.

 

다만, 교권에서 도출할 수 있는 인권의 의미는 교원의 직무상 안전과 존엄을 요구하는 ‘노동권’의 보장이 될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초등교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쏟아져 나왔던 법 개정안들은 권력이 행하는 폭력과 다름이 없었다. 그나마 교권보호위원회를 지역청 관할로 이관하거나, 교육활동을 침해받은 교사의 회복을 지원하는 일련의 안들은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장이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인지할 때 가해자(학생, 보호자 등)와 교원을 즉시 분리하는 안, 학생의 교육활동 침해행위 관련 사항을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안,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한 학생에 대한 긴급한 선도 조치와 거부나 회피 시 징계를 부과하는 안, 교육활동이 이유일 때에는 일정한 책임을 감면하는 안,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공무집행방해, 무고, 언어적 폭력 등을 추가하는 안 등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를 더 가파르게 하는 처사였다.

 

 

돌이켜보자. 법안의 내용들은 기존에도 법적/행정적 혹은 교육적 조치가 불가한 일들이 아니었다. 폭력을 비롯해 교육활동 침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해자의 분리, 학생에 대한 선도 조치와 징계 조치, 공무집행방해를 비롯해 교권보호위원회가 교육활동 침해로 결정할 수 있는 내용 등은 이전의 학교 절차와 실무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 본질이 ‘교육’이었기 때문에 법적 근거 없이도 재량의 범위에서 개별적 사안에 맞는 유연한 판단과 적용이 가능했던 측면도 있다. 물론, 그만큼 학교 분위기와 교원의 역량에 따른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처우의 발생 비율이 높았던 문제도 사실이다. 여전히 학생은 학교 운영에 대체로 참여하지 못하며, 학생의 목소리를 반드시 듣고 소통하는 구조가 부재한 현실에서, 학내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행위자는 교사와 학교 관리자, 학교 종사자이기 때문이다.

 

학생의 폭력에 대한 인식과 민감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이를 알려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충분하지 않다면 신고하는 결정은 쉽게 할 수 없다. 학생에 대한 폭력 피해 및 구제 경험을 조사하는 통계는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팬데믹 2-3년간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었던 시간은 학생은 물론 교원의 사회적응도 단연코 어렵게 했다.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 2021년 교육활동 침해 건수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던 수치는 그만큼 학생과 관계를 맺는 교원의 경험치도 낮아졌음을 읽어내야 한다.

 

등교수업 이후 교육활동 침해가 폭증한 결과는 학생과 교원 모두 시간이 필요하고, 그만큼 집중적인 자원의 투입이 필요하다는 증거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정책적 검토는 전혀 없었다.

 

갑자기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었던 만큼, 등교수업도 아무런 준비 없이 재개되었다. 갈등과 고통과 혼란은 고스란히 교육 현장 당사자의 몫이었다.

 

이제는 법과 고시를 통해 세부 내용은 더 명확해졌다. 그럼 이제는 교육활동 침해를 막을 수 있을까? 교원의 더 안전한 노동환경이 조성될까? 우선 절차가 세분화된 만큼, 교육활동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학생생활지도 고시에 따를 때, 조언, 상담, 주의, 훈육, 훈계의 순서로 지도를 하지 않는 한 절차 위반의 다툼도 발생할 것이다.

 

둘째, 교원의 정당한 학생생활지도를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학대로 보지 않도록 법에 규정되었더라도, 선언적 의미에 그칠 뿐 아동학대 신고 자체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더욱이 법 개정 전에도 ‘생활지도’는 교육으로서 학대와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학대란 부당함과 부적절함을 속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폭력이 오로지 ‘아동’의 시선에서 평가되지 않았고, 그래서 학대 여부에 차이가 발생했던 한계가 있다.

폭력이 발생한 전후 사정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교사의 노동환경 등 구조를 전환하는 노력에 앞서 개인의 탓으로 책임을 묻는 관행도 문제였다.

 

 

셋째, 학생의 권리와 책임을 함께 언급하는 규정의 형태는 권리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우려이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로서, 어떠한 자격요건도 요구하지 않는다. 책임을 다해야만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개정된 법령의 문구들은 책임의 무게를 강조하는 형태로 인권의 개념을 오해하게 만든다. 이미 성인이 된 이들이 아동기의 취약함을 이해하고 이들의 동등한 존엄성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약화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넷째, 교육활동 침해에 대한 생활기록부 기재 대응은 무용하다는 우려이다.학교폭력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 이후 분명히 알 수 있는 변화는 ‘법적 분쟁’이 많아졌다는 것뿐이다. 그 안에서 학교의 사명과 교육적 역할은 더욱 위축되고 축소되었다. 폭력이 만연한 사회 전체에 대한 성찰 없이, 학생들만의 올바른 행동을 요구하는 것도 역설이다.

 

 

 

 

무더웠던 이번 여름, 길가에서 보았던 버스는 이런 외부 광고를 싣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친구를 때리려는 학생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저는 아동학대 교사인가요?” 그렇지 않다. 아동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순간을 막아내는 것은 관계된 아동 모두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폭력이 아닌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교육하며, 더 바람직한 사회환경을 함께 논의하며 만들어가는 경험이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는 교원과 학생, 보호자 사이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성적으로 대표되는 공정과 공평이 아니라, 개인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의사소통의 노력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일 것이다.

물론, 신체에 가해진 물리적 강제를 이유로 ‘아동학대’든 ‘폭행’이든 신고하는 학생이나 보호자는 있을 수 있다.

 

이건 설령 ‘누구든지 아동학대를 신고’할 의무가 규정되지 않았던 때에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다.

 

필요한 것은 교원에 대한 지지적 신호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강력하게 투영되는 교육자에 대한 믿음,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교육환경의 자원과 인프라 부족을 돌아보는 논의, 더 나은 지도 방법을 알고 실천하기 위한 연수의 기회, 나아가 교원과 학생, 학부모가 머리를 맞대 학내 문화를 바꿔 나갈 수 있는 소통의 장이 구조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신고한 학생/보호자와 교원 간에 이해와 회복을 도모하는 후속 과정이 있어야 사고는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아동의 필수적인 교육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며, 온 시민의 평생교육을 지지하는 변화의 기반이 된다.

 

교사의 권한/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사라진 것은 서로에 대한, 사회에 대한 신뢰이다. 믿지 못하는 이들이 맺는 관계에는 허용과 수용, 포용이 존재할 수 없다. 법과 기준, 처벌만이 요구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규율을 집행하는 주체는 대체로 성인이라는 점이다(사실상 아동이 규제적 권한을 행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교육이 부당함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면, 더 이상 교육이 될 수 없다. 교육은 아동의 인격, 재능, 정신적/신체적 능력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 의식을 높이며, 인권에 기반해 자유사회에서 책임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준비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아동권리협약 제29조 제1항).

1996년 교육을 위한 새로운 관점과 전망: 유네스코 21세기 세계교육위원회 종합보고서(International Commission on Education for the Twenty-first Century, Learning:The Treasure Within)는 평생교육은 ‘아는 것’, ‘하는 것’, ‘함께 사는 것, ‘되는 것’이라는 네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1)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더 커진 기초학력 저하에만 몰두하는 학습 관련 통계와 정책은 교육권의 본질적 특징 중 하나인 알 권리에만 집중하는 실태를 드러낸다. 이러한 통계는 교육 시스템보다는 학습자에게 문제가 있음을 무심코 시사하는 문제가 있다.

 

2) 또한, 교육권 특별보고관이 지적하였듯, 아동의 교육받을 권리와 사회 공동의 미래를 보장하는 데에 중추적인 교원의 역할이 적절히 평가되지 못하는 현실도 위기의 요인이 된다.

 

3) 즉,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서 아동학대 가능성을 일괄 배제하는 법안은 결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교육권에 대한 교원의 귀중한 기여를 인정하는 전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아동의 권리를 진지하게 응시하는 교육자의 역할, 교육자의 책임을 지지하는 양육자의 태도, 학생과 교육자, 양육자가 기꺼이 소통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변화를 소망해야 한다.

 

시스템의 혁신을 논하기에도 부족할 이때에, ‘누군가’의 권리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이득 다툼이 결국 아동의 교육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두려움만 커진다.

 

교육권은 학생의 권리이지, 가족이나 지역사회의 권리가 아니다. 적절한 방향과 지도를 제공하는 부도 또는 가족, 지역사회 구성원의 책임, 의무와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아동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교육, 정보, 표현의 자유, 사상, 양심 및 종교에 대한 아동의 권리를 완전히 존중하고, 아동의 능력에 따라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된다.

 

학생의 권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전에, 학생을 교육하는 것은 ‘지식 전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는 교육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다. 국회와 정부의 대책이 공허한 이유는, 교육의 주체가 아동이라는 점을 잊고 있거나 간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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