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돔 가득 메운 e스포츠 팬…“페이커와 함께 성장, 뭉클해요”
“월드컵만큼 뜨겁다”…게임 팬 1만여명에 광화문 들썩
e-스포츠 최초 광화문 광장 거리 응원전
음악에 진심인 ‘롤드컵’…뉴진스 선택한 이유는?
5년만에 한국에 돌아온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 결승전이 열린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을 찾은 e스포츠 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탄성을 내질렀다. 롤드컵이 한국서 열리는 건 2018년 대회 이후 처음인데다, 결승전이 서울에서 열린 건 9년 만인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지난 8월 진행된 사전예매에서 1만8000여 관람석이 20분 만에 매진됐다. 최근 중계 방송 시청 시간 감소, 산업 규모 축소 등 침체기를 겪는 게임 업계에서는, 팬층이 두껍고 시장 규모 또한 큰 한국에서 오랜만에 열리는 이번 대회가 산업 재반등에 도움을 줄 거란 기대가 나왔다.
이날 오후 5시부터 펼쳐진 결승전에선 ‘페이커’ 이상혁(27)을 앞세워 역대 12번의 롤드컵 가운데 가장 많은 3번의 우승을 차지한 국내 대표 강팀 ‘티원’(T1)과, 젠지, 빌리빌리게이밍 등 유력 우승 후보들을 누르고 결승에 깜짝 진출한 중국 팀 ‘웨이보게이밍’이 맞붙어 특히 시선을 끌었다.
201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대회 이후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티원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결승에 진출했다.대학생 강민혁(24), 정태경(22)씨는 리그 오브 레전드 캐릭터 ‘티모’ 모자를 나란히 쓴 채 경기장을 찾았다. 강씨는 “신체적 조건이 많은 걸 좌우하는 다른 스포츠 종목들과 달리 e스포츠는 시공간의 제약이나 ‘피지컬’의 제약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어 매력이 있다.
롤드컵 시즌2(2012년) 때부터 페이커의 경기를 보며 함께 플레이 했는데, 여태껏 한 팀에서 변치 않는 기량을 뽐내는 걸 보면 뭉클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티원의 결승 진출을 미처 예상하지 못해서 사전예매를 하지 못해, 지난주 중고 장터에서 웃돈을 주고 50만원에 티켓을 겨우 구했다. 얼마를 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티원을 응원하는 이준경(27)씨는 “동갑내기인 페이커가 프로 리그에 데뷔할 때부터 봐 왔는데,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 집에서 경기를 봐도 되지만 현장에 직접 오니 확실히 다함께 한 팀을 응원하는 열기가 느껴져 좋다”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경기장을 찾은 임주혜(27)씨는 “함께 성장한다고 하기에 페이커는 너무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아니냐”며 웃었다.
멀리서 ‘원정 응원’을 온 국외 팬들도 적지 않았다.
티원을 응원하려 호주에서 서울을 찾았다는 팀(29)과 마이클(28)은 “페이커 때문에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을 시작했다.
티원의 홈인 한국에 와서 페이커 경기를 직접 보는 게 10년 전부터 꿈이었는데 드디어 오게 돼 기쁘다.
롤드컵을 볼 겸 한국을 찾았다가 남해 등 서울 말고 다른 도시들도 둘러봤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온 드보라(28)와 블라디(26)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게임 속 캐릭터 ‘바이’로 코스프레(분장) 한 채 경기장을 찾았다. 이들은 “티원은 놀라운 팀”이라고 환호했다.
결승전에 앞선 오프닝 공연에는 걸그룹 뉴진스가 등장해 관중들의 흥분을 돋웠다.
뉴진스는 지난달 이번 대회 주제곡인 ‘갓즈’(GODS)를 공개해 주목을 끌었다.
전날(18일)에도 여자아이(들), 에프티(FT) 아일랜드, 앨런 워커 등 국내외 가수들이 출연하는 대규모 사전 콘서트가 열렸다.이날 광화문 광장엔 결승전 현장을 직접 찾지 못한 팬들을 위해 대형 스크린에 경기가 생중계됐다. 1만여명이 운집해 거리 응원전을 벌였다. 서울게임콘텐츠센터 입주기업 등 서울시가 지원하는 중소 게임사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게임쇼박스’도 운영됐다.
“그동안 서브 컬쳐로만 있었던 이(e)-스포츠가 월드컵처럼 거리응원까지 할 만큼 성장했다는 게 신기해요.”
19일 오후 4시께 ‘2023 리그오브레전드(LoL·롤)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거리 응원이 열린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윤창현(33)씨는 1만여명(주최 쪽 추산)의 관중을 보고 깜짝 놀랐다. 롤의 인기캐릭터 ‘티모’ 모자를 쓰고 온 윤씨는 “2000년대 중반 부산 광안리에서 열렸던 스타크래프트 결승전이 떠오르기도 한다”며 “이스포츠 시장이 얼마나 커졌는지 체감된다”고 말했다. 윤씨와 함께 온 서은영(32)씨 역시 “경기가 열리는 고척돔 티켓을 구하지 못해 광화문 광장에 왔는데 이곳에서 보니 이스포츠가 이젠 주류 문화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저번 결승전에는 시간이 안 맞아 가지 못했는데, 이번엔 거리응원을 할 기회가 생겨서 좋다”고 했다.
5년 만에 라이엇 게임즈의 인기 온라인 게임 롤의 이스포츠 경기인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이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리는 가운데, 광화문광장에서는 이스포츠 팬들이 모여 거리 응원전을 벌였다. 이스포츠 경기로 월드컵·올림픽처럼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 응원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광화문에는 전신에 롤 캐릭터 분장을 한 팬부터 연인과 함께 구경 온 시민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선수들을 응원했다.
한국 롤 프로팀 ‘티(T)1’의 ‘페이커’ 이상혁(27) 선수를 응원한다는 차민호(26)씨는 이날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곳을 찾았다.
차씨는 “고척돔에 장애인석이 마련됐지만, 활동지원사 좌석이 따로 없어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라면서도 “이스포츠 거리응원은 처음 와보는 만큼 선수들이 행복하게 경기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고 했다.
롤 캐릭터 ‘우르곳’ 분장을 하고 이곳을 찾은 김석진(30)씨는 “롤이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되기 전부터 했을 만큼 게임에 대한 애정이 크다”라며 “오늘 거리응원이 열려 코스프레까지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팬들은 이스포츠 경기 응원도 월드컵과 별다르지 않다고 했다.
유장용(31)씨는 “얼마 전 월드컵 거리 응원도 갔었는데, 오늘 분위기는 그때만큼이나 뜨겁다”라며 “축구도 좋아하는 선수들이 있는 것처럼 게임 팬들도 좋아하는 게이머들이 있다.
좋아하는 선수가 나오면 환호하는 것도 똑같다”고 했다.
친구 4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정훈용(26)씨는 “사실 롤은 ‘페이커’ 말고는 잘 모른다”면서도 “롤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가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거리 응원 분위기를 즐기고 싶기도 해서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이스포츠 문화와 거리 응원 문화가 생경한 외국인들은 광장에 까마득하게 모인 팬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1일 경기를 보기 위해 폴란드에서 왔다는 루카즈(33)는 “부산 준결승 티켓은 구했는데, 결승 티켓은 구하지 못해 광화문에 왔다”며 “거리 응원은 폴란드에서 볼 수 없는 거라 신기하다”고 말했다.
루카즈와 함께 온 사이먼(26)은 “한국은 나이가 있는 사람도 버스에서 핸드폰으로 롤 경기를 즐겨보는 것 같다.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문화가 인상 깊다”고 했다.
롤은 2009년 미국 라이엇 게임즈가 출시한 온라인 전투게임이다. ‘롤 월드 챔피언십’은 2011년 이후 매년 세계 리그 강자들이 모여 세계 최강 팀을 가리는 대회로, 세계 최대 이스포츠 행사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국내 20∼30대 사이에선 ‘월드컵’에 빗대 ‘롤드컵’이란 별칭으로 부를 정도로 인기다. 한국에선 5년 만에 경기가 열리는 데다 이날 결승전에선 중국의 ‘웨이보 게이밍 포 아우디(WBG)’와 한국 ‘티1’팀이 붙는 ‘한중전’이 성사되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라이엇 게임즈 담당자 단독 인터뷰
19일 고척돔 결승전 앞두고
뉴진스의 오프닝 무대 예고
‘리그 오브 레전드’ 제작사 라이엇 게임즈는 2014년부터 매년 롤드컵 주제가를 만들고 결승전에서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2014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 때는 미국 그래미상을 받은 록 밴드 이매진 드래곤스가 처음 내한해 ‘워리어스’를 불렀고,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체이스센터에서 열린 결승전 때는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 최장 기간 1위 기록(‘올드 타운 로드’ 19주)을 세운 래퍼 릴 나스 엑스가 오프닝 무대에 섰다. 뉴진스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라이엇 게임즈는 왜 뉴진스를 선택했을까? 이에 대해 마리아 이건 라이엇 게임즈 음악·이벤트 글로벌 책임자는 한겨레와 한 단독 서면 인터뷰에서 “올해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만큼, 처음으로 케이팝 아티스트와 주제가를 협업해 한국 선수들을 향한 헌정을 표하고자 했다. 우리는 게임이 가진 힘을 잘 이해하는 하이브(뉴진스 소속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뉴진스가 데뷔 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걸 보고 이번 협업의 성공을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오프닝 무대의 주인공은 또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속 챔피언(게임을 수행하는 캐릭터) 6명으로 결성한 가상 그룹 하트스틸이다. 보컬이나 래퍼를 맡은 4명의 멤버는 실제 아티스트 목소리를 기반으로 하는데, 멤버 이즈리얼의 목소리는 그룹 엑소의 백현이 맡았다. 하트스틸은 지난달 24일 데뷔곡 ‘파라노이아’를 발표했으며, 이번에 공식 데뷔 무대를 선보인다. 라이엇 게임즈는 이전에도 챔피언들로 결성한 가상 걸그룹 케이디에이(K/DA), 헤비메탈 밴드 펜타킬, 힙합 그룹 트루 데미지 등을 선보인 바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은 150명이 넘는 만큼, 또 다른 가상 그룹의 출현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
라이엇 게임즈는 ‘라이엇 게임즈 뮤직’이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고 그동안 롤드컵 주제가 10곡을 포함해 750여곡을 발표해왔다. 게임 회사가 왜 이렇게 음악에 열심인 걸까? 이건 음악·이벤트 글로벌 책임자는 “음악은 감정적 설득력이 높은 콘텐츠다. 롤드컵 주제가를 듣고 해당 대회 결승전의 특별한 순간을 떠올리거나 가상 그룹의 팬이 되면서 챔피언들을 더 친밀하게 느낄 수 있다. 결국 음악은 게임 이용자들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라이엇 게임즈의 음악에도 케이팝의 영향력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2018년 데뷔한 케이디에이는 케이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가상 걸그룹이다. 멤버 목소리에는 그룹 (여자)아이들 소연과 미연이 참여했다. 이건 음악·이벤트 글로벌 책임자는 “한국에서 대회가 열린 2018년 당시 케이팝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케이팝에 대한 애정과 헌정을 표현하고자 시도한 것이 케이디에이였는데,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케이디에이의 음악은 12억회 이상 재생됐으며, 데뷔 싱글 ‘팝/스타스’는 미국음반산업협회에서 플래티넘(100만장 이상 판매) 인증을 받았다. 이번에 뉴진스가 롤드컵 주제가를 부르고 새 가상 그룹 하트스틸에 백현이 참여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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