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빈곤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복지부의 당찬 포부
지난 9월 정부는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배포된 보도자료에서 복지부는 생계급여 선정 기준 단계적 상향, 자동차 재산 기준 개선,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완화 등 당장 내년부터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는 희망을 설명한다. 여기서 내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복지부가 빈곤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그 어떤 복지부 보도자료에서 이처럼 당찬 제목을 활용했던 적이 있었을까. 사전을 찾아봤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해소’란 ‘어려운 일이나 문제가 되는 상태를 해결하여 없애 버림’이라고 되어 있었다. 고로, 복지부가 이번 종합계획으로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고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3차 종합계획에서 제시한 개선과제들은 오랜 기간 동안 우리를 괴롭혀 온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 지나치게 부족해 보였다. 제목과 내용이 다르다. 빈곤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복지부의 보도자료는 선정적 제목으로 구독자의 클릭을 유도하는 낚시성 기사의 형식과 닮아 있었다.
해소라 쓰고 완화를 말하기
그렇다면 복지부는 무슨 근거로 ‘해소’를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생활고에 기반한 비극적 사건이 보도될 때면 우리는 뉴스를 통해 종종 복지 사각지대라는 말을 듣게 된다. 아직 학술적으로 합의된 개념이 있는 것은 아니나, 통상 복지 사각지대는 크게 ‘제도적 사각지대’와 ‘급여 사각지대’로 구분된다. 빈곤 문제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전자는 충분히 가난하지만 여러 제도적인 조건들(대표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수급 자격을 가질 수 없는 경우를 말하고, 후자는 수급 자격을 가지지만 급여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그것으로는 가난의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 말고도 자격이 있음에도 신청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관련 정보를 알 수 없어 복지 수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 복지 수급의 낙인을 우려하여 수급을 포기하는 경우 등도 복지 사각지대에 포함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선정 기준을 완화하여 수급 대상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는 방법과, 수급자 선정여부와 급여수준의 기초가 되는 기준중위소득을 인상하거나 개별급여의 수준을 높이는 방식을 기대하게 된다. 많지는 않지만 미충족 복지 욕구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복지급여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 복지부가 ‘해소’한다는 사각지대 대응 방안은 대체로 이 둘을 고루 갖추어야 했던 것이다.
주요 과제들을 살펴보자. 복지부는 이번 3차 종합계획의 핵심과제를 10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먼저 생계급여 선정 기준을 현 기준중위소득 30%에서 35%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한다. 수급 가구에 중증장애인이 있을 경우 부양의무자 기준 미적용,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 가구의 경우 재산 공제액 인상, 자동차 재산 기준 개선, 주거급여 선정 기준을 기준중위소득 50%까지 확대, 청년층 추가공제 연령 인상, 교육급여를 최저교육비의 100% 수준으로 인상 등도 핵심과제로 제시된다. 그러나 재가의료급여 사업 확대나 교육급여 보장 수준 확대 등 몇 가지 과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대상 인구수를 직접적으로 확대하는 데 집중된 기준 완화 방안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초생활보장 수급 체계 안으로 한계가구를 편입시켜 수급자를 확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업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해 온 비극적인 사건들이 보여준 복지 사각지대의 모습은 선정 기준을 일부 완화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경우들이 대체로 아니었다.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막막한 현실에 무너진 삶, 복지급여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보호받지 못한 다양한 노동으로 내몰리는 노인·아동·장애인·여성들, 의료비와 돌봄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비극적 선택에 가까워지는 느린 죽음들이 통계로 잡히지 않는 ‘해소’해야 할 사각지대의 단상이다.
정부가 이를 몰라서 점진적인 ‘완화’의 경주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난 8월 확정된 내년 기준중위소득 인상이 기초생활보장제도 급여 수준의 동반 상승을 유도하고, 다양한 기준 완화 조치들이 소득인정액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 실제 급여 수준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정부의 이러한 노력을 무턱대고 폄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언급조차 없다
하지만 이번 종합계획에는 복지 사각지대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단초조차 언급되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종합계획에서 복지부는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이 66만 명에 달할 뿐 아니라 주요인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추정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사적 부양의식 약화에 더불어 형식적으로나마 유일하게 의료급여에만 남은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폐지의 요구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통계도 함께 제시한다. 그런데 정작 복지부는 3차 종합계획의 추진 방향을 재산 기준 조정 및 부양비 부과제도 개선과 단계적 완화로 잡고는 장기과제로 추진한다는 계획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얼마나 많은 죽음과 고통을 마주해야 해묵은 가족부양 논리를 포기할 것인가? 4차 종합계획은 윤석열 대통령 퇴임 1년 전인 2026년에 수립될 것이다. 3차 계획에 향후 폐지계획조차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으니, 복지부와 재정 당국은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적어도 2029년까지는 의료급여 부양의무 기준 폐지요청을 수용하지 않고 최대한 지연시키려 할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제도 도입 초기의 정책입안자들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이토록 모진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예상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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